
▲ 엄마 소백산과 아빠 떡갈봉이 결혼해서 낳은 일곱 자녀. 저 멀리 엄마 소백산이 보인다.
땅에 막 산과 들, 물길이 만들어지던
아주 먼 옛날이야기예요.
충북 단양에 있는 고운골 어의곡 마을에
크고 작은 여러 산들이 들어섰어요.
그 중 가장 큰 산이 바로 소백산(小白山)이죠.
높이가 1,400m나 되는 큰 산이었지만,
이름에는 왜인지 ‘작다’는 뜻인 ‘소’가 붙었어요.
이유가 있어요.
대한민국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의
수많은 산들이 하나같이 “내가 최고야!”를 외칠 때,
소백산은 “나는 작아!”라고 말했어요.
클수록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을 따라
스스로 이름을 지은 것이죠.
크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소백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게 되었어요.
세상이 만들어진 후, 아주 긴 세월이 지났어요.
어머니의 산, 소백산은 결혼을 하게 됐어요.
소백산이 선택한 결혼 상대는
어의곡 마을 옆을 든든하게 지키는 ‘떡갈봉’.
떡갈봉은 떡갈나무와 비슷한 모양이라 붙은 이름이에요.
소백산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백두대간의 많은 산 친구들은 소백산을 몹시 놀렸어요.
세상을 만든 하늘도 “절대 반대!”라고 외쳤죠.
이들의 반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소백산은 거대한 산인데 비해, 떠갈봉은
아주 작은 봉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봉은 ‘뾰족하고 높은 것’을 나타내는데,
여러 개의 봉이 모인 것이 ‘산’이에요.
이것만 봐도 둘의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죠.
게다가 산과 봉은 각자 품고 있는 나무, 풀, 물도 너무 다르니,
주변에서는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거센 반대와 놀림에도 소백산의 뜻은 굳건했어요.
“결혼은 겉모습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해요.”
친구들과 하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떡갈봉의 친구인 ‘잠봉’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어요.
주변의 시선과 달리, 둘은 오랫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슬하에 일곱 남매를 두게 되었습니다.
고운골 어의곡에 7개의 봉우리(7봉)가 들어섰고,
휑하던 골짜기는 꽉 찬 모습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둘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흘러, 소백산과 떡갈봉은 결국 헤어지게 됐어요.
가장 큰 이유는 엄마 소백산이 살기엔
어의곡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에요.
가족의 품을 떠난 소백산.
어의곡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넓고 일곱 자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떡갈봉은 친구인 잠봉과 마주 보고 있어요.
또 무엇보다 길과 물 건너 살고 있는
사랑하는 일곱 자녀를 늘 지켜보고 있어요.
▲ 아빠 떡갈봉의 친구이며 결혼 주례를 선 잠봉. 떡갈봉과 마주보고 있다.
7봉 자녀들도 모두 잘 살고 있어요.
특히 1봉은 막내 7봉을 품에 안고
엄마처럼 잘 돌봐줘요.
나머지 봉들도 엄마를 그리워하지만,
곁에 사는 아빠를 보며 씩씩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 7봉 가족에게 큰 걱정이 하나 생겼어요.
아빠 떡갈봉이 머리를 크게 다친 거예요.
떡갈봉을 화재로부터 잘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나쳐 만든 상처예요.
머리를 다친 떡갈봉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해요.
게다가 다친 뒤 전에 없던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요.
무엇인가 흘러내려, 멀리서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죠.
사람들은 일곱 자녀를 지켜보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처지와,
아픈 상처 때문에 슬픈 떡갈봉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떡갈봉이 스스로 힘을 내길 기원하고 있어요.
▲ 사람들의 욕심으로 상처가 난 소백산 남편 떡갈봉. 자녀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데, 병까지 얻어 흘리는 '아빠의 눈물'은 아닐까.
엄마 소백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떨어져 살고 있지만, 한시도 잊지 않고 먼 발치에서
일곱 자녀와 남편을 지켜보고 있어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하려고
큰 바람과 비, 눈보라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죠.
가족의 곁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신의 결정을 반성하는 뜻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품을 내어주고 있답니다.
가족과 헤어진 뒤 소백산은 겨울이 되면 머리가 하얗게 변해요.
자녀를 끝까지 돌보지 않아 하늘이 내린 벌이에요.
하지만 벌을 받는 순간에도, 자녀를 향한 사랑이 식은 적은 없답니다.

▲ 하얀 눈으로 덮인 엄마 소백산. 자식을 버린 벌로 겨울 한철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고.
글·사진 박원배 고운골 기자
▲ 엄마 소백산과 아빠 떡갈봉이 결혼해서 낳은 일곱 자녀. 저 멀리 엄마 소백산이 보인다.
땅에 막 산과 들, 물길이 만들어지던
아주 먼 옛날이야기예요.
충북 단양에 있는 고운골 어의곡 마을에
크고 작은 여러 산들이 들어섰어요.
그 중 가장 큰 산이 바로 소백산(小白山)이죠.
높이가 1,400m나 되는 큰 산이었지만,
이름에는 왜인지 ‘작다’는 뜻인 ‘소’가 붙었어요.
이유가 있어요.
대한민국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의
수많은 산들이 하나같이 “내가 최고야!”를 외칠 때,
소백산은 “나는 작아!”라고 말했어요.
클수록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을 따라
스스로 이름을 지은 것이죠.
크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소백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게 되었어요.
세상이 만들어진 후, 아주 긴 세월이 지났어요.
어머니의 산, 소백산은 결혼을 하게 됐어요.
소백산이 선택한 결혼 상대는
어의곡 마을 옆을 든든하게 지키는 ‘떡갈봉’.
떡갈봉은 떡갈나무와 비슷한 모양이라 붙은 이름이에요.
소백산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백두대간의 많은 산 친구들은 소백산을 몹시 놀렸어요.
세상을 만든 하늘도 “절대 반대!”라고 외쳤죠.
이들의 반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소백산은 거대한 산인데 비해, 떠갈봉은
아주 작은 봉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봉은 ‘뾰족하고 높은 것’을 나타내는데,
여러 개의 봉이 모인 것이 ‘산’이에요.
이것만 봐도 둘의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죠.
게다가 산과 봉은 각자 품고 있는 나무, 풀, 물도 너무 다르니,
주변에서는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거센 반대와 놀림에도 소백산의 뜻은 굳건했어요.
“결혼은 겉모습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해요.”
친구들과 하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떡갈봉의 친구인 ‘잠봉’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어요.
주변의 시선과 달리, 둘은 오랫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슬하에 일곱 남매를 두게 되었습니다.
고운골 어의곡에 7개의 봉우리(7봉)가 들어섰고,
휑하던 골짜기는 꽉 찬 모습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둘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흘러, 소백산과 떡갈봉은 결국 헤어지게 됐어요.
가장 큰 이유는 엄마 소백산이 살기엔
어의곡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에요.
가족의 품을 떠난 소백산.
어의곡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넓고 일곱 자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떡갈봉은 친구인 잠봉과 마주 보고 있어요.
또 무엇보다 길과 물 건너 살고 있는
사랑하는 일곱 자녀를 늘 지켜보고 있어요.
7봉 자녀들도 모두 잘 살고 있어요.
특히 1봉은 막내 7봉을 품에 안고
엄마처럼 잘 돌봐줘요.
나머지 봉들도 엄마를 그리워하지만,
곁에 사는 아빠를 보며 씩씩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 7봉 가족에게 큰 걱정이 하나 생겼어요.
아빠 떡갈봉이 머리를 크게 다친 거예요.
떡갈봉을 화재로부터 잘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나쳐 만든 상처예요.
머리를 다친 떡갈봉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해요.
게다가 다친 뒤 전에 없던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요.
무엇인가 흘러내려, 멀리서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죠.
사람들은 일곱 자녀를 지켜보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처지와,
아픈 상처 때문에 슬픈 떡갈봉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떡갈봉이 스스로 힘을 내길 기원하고 있어요.
엄마 소백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떨어져 살고 있지만, 한시도 잊지 않고 먼 발치에서
일곱 자녀와 남편을 지켜보고 있어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하려고
큰 바람과 비, 눈보라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죠.
가족의 곁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신의 결정을 반성하는 뜻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품을 내어주고 있답니다.
가족과 헤어진 뒤 소백산은 겨울이 되면 머리가 하얗게 변해요.
자녀를 끝까지 돌보지 않아 하늘이 내린 벌이에요.
하지만 벌을 받는 순간에도, 자녀를 향한 사랑이 식은 적은 없답니다.
▲ 하얀 눈으로 덮인 엄마 소백산. 자식을 버린 벌로 겨울 한철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고.
글·사진 박원배 고운골 기자